[에스컬레이터를 걷는 사람도 ‘할말’이 있다(정착된 걸 바꾸는 건 쉽지 않다)(2)
에스컬레이터의 한쪽 비우기에 대한 논란은 현재진행형입니다.
티스토리를 마치기 전에 이 논란에 대한 몇 개의 글을 올립니다.
https://jtinside.tistory.com/9979
https://jtinside.tistory.com/9980
철도저널사 협력으로 철도저널 2019년4월호의 ‘에스컬레이터를, 믿고 있다(エスカレーターを, 信じてる)’를
재구성한 기사를 공유합니다.
1편에 이은 내용입니다.
▶중국의 에스컬레이터는 ‘초고속’
십 몇 년 전에 중국 상하이로 이사간 다음주에 체류허가 신청을 위해 가까운 역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
엄청 빠른 속도에 잠시 주춤한 적이 있다. 몸이 긴장되는 순간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속도가 빠를 뿐만 아니라 고장도 많다. 처음부터 수리중이라고 써 있으면 차라리 낫다.
타고 있던 에스컬레이터가 갑자기 멈추는 정도는 애교라는 걸 서서히 알게 되었다.
후베이성(湖北省) 쇼핑센터에서 에스컬레이터 바닥이 갑자기 내려앉으면서 엄마와 딸이 추락할 때
딸을 구했던 어머니가 숨진 사건은 일본에서도 보도되었으나, 상하이와 베이징 지하철 역에서 에스컬레이터가
갑자기 역주행해서 다치고 숨진 사고도 있다. 아파트와 호텔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낙하, 정지하거나
정지한 층에서 갑자기 올라가는 바람에 끼어 숨진 사고도 있었다.
믿을 수 없는 건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뿐만이 아니다. 매너는커녕 규칙도 잘 지키지 않는 자가용이나 버스가
빠른 속도로 도로를 달리는 걸 자전거와 오토바이, 사람과 개가 막 건너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어쨌든 집을 한걸음 나오면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서 더욱 놀라운 건 사고와 사건 자체보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태도다.
처음에는 웅성웅성 하다가도 곧 아무일 없었던 듯이 뿔뿔이 흩어진다.
▶타인에 둘러싸인 혼잡을 가는 공포를 잊게 되다
사고발생 후 책임자 및 기관에 신고하려는 사람은 없고, 운이 나빴다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일본에서 에스컬레이터를 걷는 사람을 진짜로 없애고 싶다면 속도를 올리고 폭을 좁게 하거나
경사를 크게 해서 걸을 필요성을 못 느끼도록 해서 손잡이를 제대로 잡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걸
명확히 인식시키는 것 외에는 없을까 등의 극단적 의견을 말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모든 인프라와 기관이 완벽한 기능과 안전성을 유지하고, 거기에 사람들의 신뢰와 안심감이
절대로 큰 이상, 절실한 위기관리 의식을 가지고 행동해 달라고 하는 건 어렵다.
왜냐하면 그 믿음이 없어질 때 = 신뢰를 뒤집는 대형사고가 발생하는 것과 다름 없기 떄문이다.
이래저래 얘기해도 괜찮아,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아서 안심해 버리는 사람들이 공간에서 굳이 위기감을 가지고
에스컬레이터의 반대쪽 혹은 중앙에 당당히 손잡이를 붙잡고 제대로 서 있는 것이 그 질서를 방해하거나
방해하는 쪽 모두가 계속 두려워하고 있다.
▶항상, 언제나, 언제까지나 안심하고 있다
에스컬레이터와 환경이 안전하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도 나와 같은 생각처럼 행동하며
‘뭐 괜찮겠지’라고 믿고 있다. 일단 괜찮지 않은 재해 같은 게 발생하면 그 장소의 다른 사람과 힘을 합쳐
더욱 그 질서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상시, 비상시를 따지지 않고 공간을 안전하게 유지하려는 의사가
무의식으로 움직여 미리 안전하게 설계된 것과 장소의 신뢰는 더 높아졌다.
그 자체는 정말로 좋다. 그러나, ‘양치기소년’은 아니지만, 위험을 지나치게 두려워하여 철저하게 예방과 배제하여
안전을 너무 중시하여 과보호 구조가 표준이 되면 거리와 역에서 새삼스레 ‘위험하니까 하지마시오’,
‘조심하세요’라고 외쳐도 사람들은 쉽게 그 경로를 믿으려 하지 않는다.
스마트폰의 긴급 속보에 깜짝 놀라도 실제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만두는 건 시작하는 것 보다 몇 배 어렵다
에스컬레이터의 한쪽 비우기가 시작한 1970년 당시, 역과 전철 혼잡은 더 심해서 뛰어들기 승차와
계단을 달리는 듯한 위험행위는 더 당연했던 풍경이 아니었을까?
에스컬레이터 한쪽 비우기 같이 오랜 기간 자연스레 침투한 습관을 단번에 없애긴 어렵다.
세월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변할지도 모르겠지만, 여기까지 노력과 비용으로 그만두게 할 정도의
긴급성이나 위기감을 사람들이 찾지 않는 이상, 좀처럼 진전은 없을 것이다.
어떤 일도 그만두게 하는 건 시작의 몇 배 이상 어렵다.
출처: 2월25일, 토요케이자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