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SIOPEIA의 철도이야기 [JTInside] :: [N] [철도 트리비아-317] 일본 국유철도 설립을 촉진한 사람은 맥아더였다. free counters

[철도 트리비아-317] 일본 국유철도 설립을 촉진한 사람은 맥아더였다.

 

오키나와현을 제외한 지역의 주요 철도노선은 JR그룹 각사가 운행하고 있다.

JR홋카이도, JR동일본, JR도카이, JR서일본, JR시코쿠, JR큐슈다. JR화물도 전용선로를 조금 가지고 있다.

JR그룹의 전신이 일본국유철도였다(日本国有鉄道, 니혼코쿠유테츠도 발음)

국철의 거대한 적자 기타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1987년에 분할, 민영화하여 JR그룹이 되었다.

JR그룹 발족 28년이 지나 국철(国鉄, 고쿠테츠 발음)이라는 말도 일반인에게서 들리진 않는다.

 

 

일본국유철도는 독립채산제의 공공사업체라는 특수한 형태로, 국가의 관여가 강했다.

이전은 운수성(運輸省) 관할의 국영철도(国営鉄道)였다.

국영사업이었던 철도가 일본국유철도라는 회사가 되었을까?

여기에는 패전 일본을 통합한 연합국 군사령부(GHQ, General Headquarters)

최고사령관 맥아더가 관련이 있다.

 

 

1945814, 일본정부는 포츠담선언을 받아들이고 무조건 항복했다.

다음날인 815, 쇼와(昭和) 일왕이 방송으로 전국에 패전을 전했다.

 

 

828일에 미국이 중심이 연합국군본부를 설치했으며 830일에 맥아더 장군이 일본에 왔다.

92일에 GHQ 1 지령으로 일본군은 해체되었고, 98일에 연합국군이 도쿄를 점령했다.

 

 

GHQ 일본을 민주주의로 가기 위해 노동조합 결성을 촉진했다. 그러나, 일본국민은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노동운동을 여유가 없었다. 한편, 먼저 모범을 보이려고 공무원이 노동운동을 활성화했다.

그러나, 노동운동은 파업, 단체교섭에 그치지 않고, 폭력적인 투쟁이 되었다.

 

이에 GHQ 방침을 바꿔, 미국과 같이 공무원의 노동조합 활동을 금지하기로 했다.

19487, 맥아더 총사령관은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수상에게 서한을 통해 공무원법을 만들도록 명령했다.

공무원의 단체교섭권을 규제하고, 쟁의권을 박탈한다는 내용이었다.

 

1952년에 출판한 야마카와 산페이(山川三平) 사쿠라기쵸 일기(桜木町日記)’ 따르면, 철도와 소금 등의

전매사업은 독립채산제의 공공기업체로 발족하고, 직원조합의 파업권리는 인정하지 않으며, 단체교섭권만 인정,

노동쟁의는 중재위원 조정위원에 의해 해결하게 했다.

 

국가가 관장했던 철도사업은 소금과 담배 전매사업과 같은 공공사업체로 한다. 이것이 맥아더의 지령이었다.

여기에는 국가권력과는 관계 없는 공공사업은 독립채산성으로 한다는 의도가 있었다.

운수성 측에서는 차라리 민간기업으로 한다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철도도 전매도 국가책임으로 역할이 있었다.

민간기업이라면 적자로 철수할 있는 사업부문이라도 공공사업체는 다른 흑자부문으로 보전하여

적자사업을 유지해야 한다. ‘사쿠라기쵸 일기 보면 당시 일본의 상부에 있어 공공사업체라는 생각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같다.

 

철도부문을 공공사업체로 하기 위해 19481130일에 일본국유철도법이 성립, 194961일에

일본국유철도가 발족했다. 국철은 국가의 직할은 아니지만, 최고책임자인 총재는 내각이 임명한다.

예산안은 운수성이 제출하고, 정부관련기관 예산으로 국회에서 심의를 했다.

완전한 민영회사는 아니고, 정부계열 기업체라 민간사업을 압박하기 때문에 철도. 운수사업에

직접 관계 없는 사업은 제한되었다또한 국철이 적자라도 정부가 결의한 철도노선은 건설하여 운행을 맡아야 했다.

 

국철은 원래부터 적자를 짊어져야 하는 기업으로 인건비가 늘어났다. 국철이 되기 전부터 국영철도사업은

인양자(, 전쟁에 참전하고 돌아온 사람들) 퇴역군인의 직장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퇴직했어도 연금 부담이 커졌다. 경영합리화가 진행되지 않고 적자노선을 계속 운영하여

실적이 악화되어 마침내 파탄이 국철은 1987년에 분할, 민영화 하면서 청산하게 되었다.

 

국철 말기부터 JR발족 후에 걸쳐 적자 로컬선 폐지가 이어졌다.

그리고 현재도 JR홋카이도와 JR서일본의 노선 등에서 적자노선의 존폐가 거론되고 있다.

특히 최근 JR홋카이도의 사고와 불상사에는 원래 국철분할 민영화가 최선이었는지 논란도 있다.

 

이러한 현상은 모두 맥아더 사령관이 요시다 수상에 보낸 문서 철도는 공공사업체로 하라에서 시작되었다.

패전 70, ‘일본의 철도는 아직 패전처리가 끝나지 않았다라고 말할 있다.

 

출처: 815, MyNavi

Posted by CASSIOPE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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