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제일의 궤적(상-1)] JR후쿠치야마선 사고의 배경인 ‘일근교육’의 무거운 사슬……
2005년4월, 후쿠치야마선 탈선사고 이후 각 철도회사의 대응 등을 기술한 긴 글입니다.
상편을 둘로 나눠서 올립니다. 하편도 글의 양에 따라 여러 편으로 나눌 예정입니다.
JR후쿠치야마선(福知山線) 탈선사고가 발생한 지 4월25일로 10년을 맞았다. ‘이익우선’, ‘안전경시’라는 비판을 받은 JR서일본은 변했는가? ‘가해기업’의 본질을 검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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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이러한 사고를 일으킨 회사에 들어왔습니다”
(あなたたちは、こういう事故を起こした会社に入ったのです)
4월 초, 오사카 스이타시(大阪府 吹田市)에 있는 JR서일본 연구시설 ‘철도안전고동관(鉄道安全考動館)’.
승객 106명이 희생된 JR후쿠치야마선(福知山線) 탈선사고 현장을 재현한 대규모 디오라마(철도모형)가 있는
관내에서 전 역장으로 관장을 맡고 있는 니혼마츠씨(58)가 신입사원에 말을 했다.
안전헌장을 제창하고, 입사식에서 무사고를 기원하는 JR서일본 신입사원의 모습(4월1일)
눈물을 흘리고 있는, 전시된 유족들의 메시지를 읽는 신입사원들.
올해 입사한 566명의 절반은 당시 초, 중학생이었다. 처음보는 사고재현 모습에 얼굴색이 파래지고,
이 자리에서 쓰러지는 사람도 매년 생긴다고 한다.
유래가 없었던 사고의 교훈을 가슴에 새기기 위한 ‘통과의례’로, 신입사원 연수에서 맨 처음 구성된 일정이다.
신입사원 중 1명은 “소중한 목숨을 맡은 것에 대한 책임을 느낀다. 안전으로 신뢰받을 수 있는
철도를 만들고 싶다”라고 말했다.
고동관은 2007년4월에 개설했으며, 과거 철도사고 교훈을 소개하고 있다.
안전을 스스로 생각, 움직이는 사원을 육성하는 목적이 시설 이름이 되었다.
신입사원뿐만 아니라, 약 3만명의 모든 사원과 그룹사 직원 1만명 이상이 3년에 한번 수강한다.
현재 3기로, 지금까지 약 11만6천명이 연수를 받았다.
2015년1월에는 옆쪽에 젊은 사원이 안전 구조를 배우는 ‘안전체험동’을 설치했다.
역무원과 승무원, 보선담당 등 다양한 사원이 담당 이외의 안전설비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이다.
니혼마츠씨는 “회사 전체에 ‘안전제일’ 기업풍토를 만들고 있다”라고 말했다.
▶(교육에) 잡초제거 일까지
예전 JR서일본의 교육체계는 질적으로 완전히 달랐다. 그 상징이 ‘일근교육(日勤教育)’이었다.
운전사가 실수했을 경우, 소속 운전구와 전차구장이 필요에 따라 실시하는 ‘재교육’이었다.
2005년 사고 당시, JR서일본은 “재교육을 받고 훌륭한 승무원이 된 사례도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체는 ‘징벌’에 가까운, 개인에 ‘책임추궁’ 성격이 강했다.
‘본보기’ 일근교육을 받은 베테랑 운전사는 열차 운전석에서 촬영한 영상이 흐르는 모니터를 보면서
끝없이 지적확인을 시켰다고 한다. 잡초제거를 시킨 적도 있다고 한다.
가입률 93.3%인 서일본여객철도 노동조합(JR서노조[西労組]) 관계자는 “늘어지고 있으니까 실수를 한다”라는
근성론(根性論)이 재발방지 효과가 얼마나 있었는지 의문이었다”라고 말했다.
당시 사고를 일으킨 운전사(사망)는 그날 정차위치를 크게 벗어났으나(오버런, Over-run),
이를 축소보고하도록 차장에게 부탁했다.
운전사가 된 이후 두 번째 일근교육을 두려워하여 차장과 수송지령 무선에 신경쓰느라
사고현장 앞의 커브에서 브레이크 조작이 늦어진 걸로 보인다.
실수를 한 사원이 징벌적 일근교육을 받았고, 이것이 정신적인 압박이 되어 다른 실수를 유발한다.
이러한 악순환에 빠진 일이 참사로 이어졌다.
한편, 가입률 2.3%인 JR서일본노동조합(JR서노[JR西労]) 관계자는 “일근교육의 배경에는 노사대결이 있었다.
소속조합에 따라 기간이나 내용에 분명히 차이가 있었다”라고 털어놓았다.
▶민영화 성공의 뒤에는……
“운전사는 해고다(運転士はクビだ)”
JR서일본 전 사장이었던 야마자키 마사오(71)는 철도본부장이었을 때 건널목 탈선사고를 보고한
당시 사장 이데 마사타카(井手正敬, 80)으로부터 질책을 받았으며, 업무상과실치사상 죄로 자신이
재판을 받았을 때 이렇게 밝혔다.
‘업무의 엄격한’ 이데 사장의 영향으로 실수에 살벌한 분위기가 사내에 퍼져 있었으며,
그 연장선에는 징벌적인 일근교육이 있었다.
적자 로컬선이 많아서 JR동일본, JR도카이에 비해 수익기반이 취약했던 JR서일본은 1987년4월,
국철분할 민영화 후 부사장에서 사장, 회장을 거쳐 후쿠치야마선 탈선사고로 고문역할에서 물러날 때까지
‘군림했던’ 이데 마사타카는 경영개혁에 집중해서 ‘민영화의 성공모델’로 불렸다.
국철시대는 노사관계가 뒤엉켜서 말기에는 파업과 태업이 일상이었다.
정치평론가 야야마 타로(屋山太郎, 82)는 “JR의 성공은 인사와 운임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었다.
JR서일본은 일근교육으로 노조를 압박한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시) 국토교통성 항공. 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2007년, 징벌적인 일근교육이 사고원인의 배경이었다고 지적했다.
출처: 4월24일, 산케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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